한라병원 노동자들의 투쟁이 단지 '조합원들만의 문제'를 갖고
욕심꾸러기처럼 고집 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비정규직'이 병원에까지
확산되었을 경우 환자들의 건강과 생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이미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다수의 정규직 조합원들이 자신의 고용관계에서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의 요구를 모두 포기하고 연봉계약직의
고용보장만을 요구하며 140일을 넘게 투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라병원 노동자들의 투쟁은 크게 세 가지의 의미를 지닙니다.
첫 번째, 의료서비스의 질 개선을 위한 당당한 투쟁입니다. 한라병원
노동자들이 파업 투쟁에 돌입했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도와준 사람들은
환자들과 환자보호자들이었습니다. 한라병원의 실태를 한라병원 노동자들이
잘 알 듯이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과 환자보호자들 또한 너무나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수 만원에서 수십 만원의 지원금을 아무런 조건
없이 지원해주었고, 몇몇 보호자들이 모여 밤새 수백 개의 김밥을 함께
만들고 농성중 조합원들에게 점심식사로 제공해주었으며, 노동조합과 함께
식사질 개선 등 '의료서비스 구조개선'을 요구하다가 강제 퇴원 당한
환자들도 있습니다.
한라병원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환자들이 더 이상 병원 돈벌이의 대상이
아님을 천명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두 번째, 비정규직으로 보편화되고 있는 지역에서의 고용구조를
재평가하도록 하였습니다. 제주도의 경우 타 지역에 비해 비정규직
고용관계의 보편화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직업은
'공무원'과 '교사'라는 인식이 지배적입니다. 그만큼 저임금과 고용불안이
팽팽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민 사회는 이러한 문제를 묵과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도민 사회에 비정규직의 문제를 '뜨거운 감자'로
올려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주지역의 종합병원이 타지역의 종합병원에 비해
의료서비스의 질이 현저히 저하되어 있는 원인에 대해서도 올바른 문제의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제주지역의 종합병원은 거점을 중심으로 독과점의 형태를
띄고 있어 육지의 타 병원에 비해 안정적이면서도 엄청난 수익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지 병원에 비해 의료서비스의 질이 현저히
낮은 이유가 인력부족과 근로조건의 열악함, 고용불안으로 인한 이직율에
있음을 알려내고 있습니다.
세 번째, 노동조합 운동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정규직인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비정규직의 고용보장과 의료서비스 질 개선 등 도민 건강권
사수를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결단은 한국 노동조합 역사상 가장
숭고한 결단이었습니다. 많은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의 문제를 내걸고
싸워왔지만 항상 정규직들의 이익이 전제되어야 했습니다. 즉 '정규직들의
임금 인상을 전제로 한 비정규직 투쟁' '정규직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전제로
한 비정규직 투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라병원 정규직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모두 포기하고 병원의 엄청난 탄압과 불이익 속에서도
'연봉계약직의 고용보장' 하나를 위해 흐트러짐 없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 무수히 많은 조합원들이 거리 집회 중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쓰러지면서도 그들의 투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용역깡패들을 동원한 전원 부당해고와 퇴직금 가압류,
형사고발과 파업기간동안의 무노동무임금 적용으로 인한 생계의 어려움,.
50억이 넘는 손해배상 청구,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병원
출입을 봉쇄하는 엄청나고 비열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73명의 조합원으로
시작한 투쟁대오가 조합원 164명으로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신규 대체인력
70여명과 의사, 관리자들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한라병원 직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한 것입니다.
많은 노동조합이, 특히 직권중재라는 악법으로 인해 불법의 멍에를 쓰고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병원 노동조합은 파업이 장기화될수록 조합원 수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파업 한달이 지나면 조합원 수가 30%정도 감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한라병원지부의
조합원들은 2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민주노총과 수많은 노동운동 진영이 '한라병원 노동자들이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역사 만들고 있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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